날씨의 아이(天気の子, 2019) 관람 후기(결말 누설有)
나는 마침 7월 19일 개봉 당일 날에 시간이 나서 그 전 날에 예매했다. 꽤 큰 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얼마 안 남아있었고, 제일 괜찮은 시간대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영화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도 솔직히 처음 봤다. 상영 5분 전에 도착했는데 줄이 빡빡하게 밀려있어서 조금 기다렸다. 내 뒤에도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하여튼 오랜만에 보는 신카이 마코토 작품에 조금 들떠있었다. 사실 너의 이름은은 엄청 내 취향 영화는 아니었다. 그 전 작품들의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미묘한 분위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별을 쫓는 아이이고 그 다음이 언어의 정원이다. 각각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두 개이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에서는 작화는 여전히 오히려 훨씬 더 예뻐졌지만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느낌이 많이 옅어졌고, 연출들이 너무 기존 일본 만화같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신작도 꽤 기대를 했다.
결과적으로만 말하면 영상은 정말 예뻤고, 노래도 정말 좋다. 그 외에는... 내가 좋아했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조금은 아쉬웠다.
1. RADWIMPS의 노래
대박을 친 너의 이름은 노래는 나도 아직도 좋아한다. 그리고 이번 날씨의 아이도 노래는 내 취향이다. 특히 예고편에도 나오는 미우라 토코 피처링의 '그랜드 이스케이프'는 후렴구 합창 부분이 묘하게 4월은 너의 거짓말 ost인 구스하우스의 '히카루나라'가 생각나기도 하고,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래드윔프스 노래가 다 좋았다. 진짜 신카이 마코토 영화랑 찰떡이구나 싶었다.
다만, 신카이 마코토가 래드윔프스랑 어울리는 영화만 만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너의 이름은 이후 처음 나온 작품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진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그랬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너의 이름은 보고 있나? 싶은 느낌이 드는 부분이 가끔씩 있었다. 래드윔프스 노래가 흘러나오니까 그냥 너의 이름은이 자동으로 생각났다ㅋㅋㅋ
그만큼 임팩트 있었던거겠지, 싶기도 하지만... 나는 래드윔프스랑 협업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아예 색다른 신카이 마코토를 보여주든 이전의 신카이 마코토를 보여주든, 뭐가 됐든 래드윔프스 노래는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에 고착되어 보였다. 날씨의 아이에서 신카이 마코토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말 방식을 선택했듯이 굳이 영화의 큰 부분을 좌지우지하는 배경음악을 같은 가수로 고정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노래도 마음에 들고 좋지만 솔직히 노래가 등장하는 연출이나 가수가 똑같다보니까 너의 이름은이 계속 떠올랐다...는 게 솔직한 평이다.
2. 역시나 뛰어난 작화
역시나 신카이 마코토 영화답게 그림은 정말 예뻤다. 비가 쏟아지는 장면들도 좋았다. 약간의 우울감이 담겨있고 어디선가 볼법한 거리 풍경들이 잘 캐치되었다. 그리고 역시 신카이 마코토의 빛을 사용하는 방식이 정말 능숙하다고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들에서도 하늘에 대한 동경, 관심 등이 강하게 드러난다. 내가 신카이 마코토를 좋아하는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한 하늘을 신카이 마코토는 빛을 정말 능숙하게 사용해서 보여주곤 한다.
뜬금없지만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를 정말 좋아하는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라는 뜻으로 신카이 마코토랑 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만 등장하진 않지만 빛을 사용해서 표현해내는 재주가 정말 좋다. 나도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3. 익숙한 장소들, 친근한 거리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거리 감각이 잡혀 있는 동네가 배경으로 나오다보니 뭔가 좀 반가웠다. 물론 내가 도쿄 살지도 않고 몇 번 가본 게 전부지만 중간중간 아는 곳이 나온다거나 익숙한 지명이 나오는 게 조금 즐거웠다. 스가 상 회사가 네리마 구구나 하는 감상이나 분쿄구 쪽인가? 하며 볼 수 있으니 꽤나 즐거웠다. 다시금 머릿속에 있는 지도로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은 정말 좋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타키랑 미츠하의 깜짝 등장, 팬서비스가 충실했다. 갑자기 타키가 나와서 놀랬는데 그 다음에 바로 미츠하가 나왔다. 그나저나 타키 구렛나루 어떻게 좀 제발 해주고 싶다.
4. 참신한 결말
솔직히 이건 좀 참신했다. 그리고 그 비는 3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하는 순간 엥? 싶었다ㅋㅋㅋㅋㅋ 정말 엥????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도쿄에 지하철이 아닌 페리가 교통수단이 된 장면이나 이래저래 침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상이 크게 바뀐 장면 넣은 것도 좋았다. 이전에 의뢰 받았던 할머니가 사시던 집도 침수로 사라져서 아파트로 이사갔다는 설정도 좋았다.
그냥 나는 뭔가 신기했다. 생각 못 한 전개였다. 뭐 둘이 만나서 짝짝꿍하는 건 제쳐두고 일단 나는 둘의 선택에 의해 세상의 모습이 크게 바뀌어버린 채 계속 유지된다라는 게 신기했다. 한 사람이 희생하지 않음에 따라 볕이 들지 않고 축축한 비가 계속해서 내리는 상황, 이라는 게 신선했다. 그리고 둘이 짝짝꿍하는 것도 신카이 마코토 영화에선 처음 아닌가...? 신카이 마코토 나름의 많은 생각을 가지고 그려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후기로 써놓은 글을 보다가 이런 속 뜻도 있구나 하고 알았다. 일본의 민폐迷惑 끼치지 말자는 문화에 반하는 결말이라는 점. 1의 행복보다 1의 희생으로 얻어낸 99의 행복을 더 크게 치는 사회에서 호다카와 히나의 선택...은 상식을 깼다는 얘기였다. 그렇구나... 그렇네.
5. 부족한 스토리, 텅 빈 캐릭터
사실 신카이 마코토의 모든 영화에서 가장 지적받는 부분이 부족한 스토리텔링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스토리텔링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어서 매번 괜찮은데?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번 날씨의 아이에서는 사건 전개하는 데에 급급했던 탓일까 일단 캐릭터의 행동의 동기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 현실에 찌든 사람이어서 그런가, 더 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캐릭터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가장 큰 부재는 호다카가 대체 섬에서 왜 나왔지?????????????? 나오겠지 나오겠지 했는데 안 나왔다. 정말 심각하다. 왜 안 나왔지... 이 정도는 나와줘야되는거아니냐. 작은 섬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답답해서 도쿄로 가출했다. 이거밖에 안 나온다. 솔직히 그래서 호다카가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다. 미성년자가 아무리 세상을 몰라도... 좀 더 심오한 이유가 있었다면 이해를 좀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도 않았을거다.... 어쨌든 호다카의 동기의 상세한 내용이 전무했다. 히나도 뭔가 더 나와줘야만 할 것 같은데 부족했다.
일단 마음에 안 드는 점을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내 기준 호다카는 세상물정 모르는 중 2병이다. 일단 처음에 비와서 위험하다는데 뱃머리엔 왜 나가? 돈도 제대로 없이 알바도 당연히 못 구하지. 계획도 제대로 안하고 나왔으니 당연히 그렇지. 그리고 내 기준 호다카 아웃이라고 생각한 게 총을 쏜 부분이다. 내가 그 이유가 어찌됐든 살상무기를 실제로 쏜다는 건 정말 정상적인 상식이 박힌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뭐 전쟁 중인 상황인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겨눈다는 게.... 절대 안된다. 나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솔직히 덜덜 떨린다. 내가 히나였다면 애초에 윤락업소 근처에 가지도 않았겠지만 호다카 총 쏜 거 보고 제정신 아니네 하고 절대 근처에 안 갔을거다.
그러고는 뭐 뻔하다. 이미 총까지 쐈는데 뭐가 무섭겠냐... 히나 사라지고 경찰에서 도망치고 빠져나오고 하는 거 보면 정말 쟤는 앞으로 인생 어쩌려고 저러나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내가 너무 인생에 찌들었나ㅠ 더 이상 캐릭터의 감정으로 캐릭터를 볼 수가 없다...
차라리 히나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그 전에 있던 일들이 없던 일이 된다거나 하길 바랐다. 뭐 결론적으론 호다카가 고등학교 생활동안 보호 관찰 형 받는 걸로 나왔다. 여기서 그나마 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히나는 다 제쳐두고 왜 윤락업소에 기웃거리냐. 나이도 어린게. 이게 영화에서는 되게 가볍게 그려졌다. 일본이라서 그런걸까? 미성년자에 제대로 된 보호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알바에서 짤려서 돈이 없어서 일당으로 많이 챙겨주는 윤락업소에 들어갈까 생각한다고? 심각한 문제다. 영화에서 너무 가볍게 지나가듯 나오고 호다카가 총 들고 설쳐서 별거 아닌 듯 나오지만... 혹시라도 저런 생각을 하는 애가 있다면 여자든 남자든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총을 실제로 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최대한 엮이지 말고 도망쳐야한다고 말해주고싶다. 제발...
호다카, 히나, 나기가 짐 챙겨서 나갈 땐 정말 한숨이 나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아주 전형적인 클리셰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뭐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순 있지만 좋아하는 클리셰는 아니다. 각박한 세상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제대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난 더 이상 어린 아이의 사고방식을 칭찬할 순 없는 사람인가보다 ㅠㅠㅠㅠ
스가상은 어른이면서 생각이 없나 싶다. 어린 애가 가출해서 배회를 하고 있는데 숙식제공 잡무를 시킨다든지 하는 행위는 전혀 좋게 볼 수 없었다. 물론 애초에 그렇게 상식있는 인물로 그려낸 캐릭터는 아니니까 감안하고 봐야겠지만ㅠㅠ... 일본 애니에 꼭 등장하는 전형적인 살짝 나사빠진 느낌의 어른 캐릭터이다보니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나츠미는 오토바이 장면에서 너무나 너의 이름은의 텟시 느낌이 물씬 났다. 사실 너무나 전형적인 주변 인물들뿐이다 보니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이구나 싶은 느낌이 강했다. 좀 더 각각의 캐릭터의 특성이 강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6. PPL의 향연, 상업 영화의 면모
날씨의 아이 개봉 전에도 광고를 정말 많이 봤다. 그럴만도 하지. 센과 치히로보다도 많이 벌어들인 애니메이션 감독의 차기작인데 당연한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로손에서도 콜라보 상품이 나오고 바이토루 광고도 차지했었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에서 봐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영화를 보자마자 크게 알아챘다. 엄청난 PPL... 로손 카라아게 군이 나온다든가 호다카, 히나, 나기가 냉장고를 열어서 페양구 야끼소바랑 닛신 컵누들 등등 먹는 장면이 대놓고 나왔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에서 PPL이 쏟아져 나와서 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영화 만드는 데 돈 많이 들고 PPL 받아서 돈 벌고 할 수 있는거지만... 계속 나왔다. 친근하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보면서 상업영화 다 됐네 싶었다. 상업영화 맞긴 한데 난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고싶었던 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7. 그 외
정말 아주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성우가 살짝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사실 민감한 편이 아니라서 연예인 성우든 뭐든 신경 쓴 적이 거의 없다. 근데 스가 패밀리 두 명이 아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뭐지.. 했는데 연예인 성우였다. 중요한 장면인데도 뭔가 목소리가 연기가 서투른 느낌이네 싶었는데 엔딩 크레딧에서 보니 연예인이더라.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가장 마음에 든 캐릭터는 나기이다. 뭐, 클리셰뿐인 캐릭터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클리셰의 노예이다. 정도를 지키는 클리셰라면 환영이다. 여자 캐릭터 중에는 나츠미였다. 중간중간 현실을 깨닫고 취준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호다카는 총기 소지에서 탈락이고 히나는 그냥 별 생각 없다. 스가 패밀리의 스가는 처음 못 미더운 어른 느낌이 싫었다.
날씨의 아이를 보면서 느낀 점 하나는 내가 정말 정도의 길을 꿈꾸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이다.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일탈을 꿈꾸면서도 정도를 벗어나면 되게 불안해하고 급급해하는 사람이란걸.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는 굉장히 그런 정도란 걸 가볍게 다루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어린아이의 동심 순수함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충동적으로 총 방아쇠를 겨눈다든지 아무 계획없이 도망을 친다든지, 히나를 찾겠다며 경찰을 따돌리는 둥 앞 뒤 생각없는 행동을 나는 절대 좋게 볼 수 없었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미츠하 가슴 클로즈업 만지기, 여고생이 만든 술을 판다는 생각이 소재로 등장한다. 이번 날씨의 소녀에서도 여전히 나츠미의 가슴이 클로즈업 된다든지 미성년자가 윤락업소에서 일하려고 하는 장면을 그린다든지 하는 모습에서 한숨이 나왔다.
일본 만화에는 판치라, 가슴 만지기 등 남성의 판타지적 사고방식이 만연하고, 이 감독은 그걸 아주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사실 별을 쫓는 아이까지는 그런 느낌이 좀 덜 했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발에 대한 묘사로 은연 중에 드러냈지만 너의 이름은을 기점으로 아주 공공연히 나온다. 내가 그 전까지 알던 신카이 마코토가 굉장히 단편적인 이미지였다는 살짝의 실망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영화 후기를 쓰는데 시간 들여서 목차 정리하고 할 근성은 없어서 대충 적어 내려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생각 정리를 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정리 되지 않은 상태로 써내려가다보니 두서 없는 글이 된 것 같다. 어쨌든 내 날씨의 아이에 대한 평가는 그림이랑 노래는 좋았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 변주곡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보여준 신카이 마코토의 새로운 세계관이 다음 영화에서는 더욱 독자적이고 개연성있게, 만연한 일본 만화의 남성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볼 수 있길 바란다.